인생이 흔들릴 줄 몰랐던 그때의 나

글로벌 IT 기업에서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며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35살, 결혼도 했고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도 하나 있습니다. 월급도 적지 않았고, 회사 분위기도 좋아 나름 만족하며 살고 있었죠. 퇴근 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주말엔 아이와 공원 나들이를 다니던 평범한 일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질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믿었던 사람이었기에 더 아팠던 순간들

문제는 1년 반 전쯤, 지인 소개로 알게 된 투자 제안에서 시작됐습니다. “리스크는 거의 없고, 수익률이 좋다”는 말에 혹했죠. 처음엔 몇 백만 원만 넣었는데, 실제로 수익이 나오는 것처럼 보여 점점 금액이 커졌습니다. 결국 보이스피싱까지 연결되며 9,200만 원의 빚이 생겼습니다.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습니다. 저축은행 두 곳, 대부업체 두 곳에서 빌린 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고, 이자는 매달 제 월급의 절반 이상을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잠도 못 자고, 가족에게 티도 못 냈습니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져만 갔습니다.

끝이라 느껴졌던 날, 다시 시작을 결심하다

버틸 수 있을 만큼은 버텼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가 “아빠 요즘 왜 자꾸 화내?”라고 묻는 순간, 무너졌습니다. 그날 밤, 아내에게 처음 모든 걸 털어놓았고, 아내는 오히려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라며 손을 잡아줬습니다.

그렇게 개인회생이라는 제도를 알게 됐고, 한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상담을 받기로 했습니다. 상담을 받으러 가는 날, 창피함과 두려움이 뒤섞여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정말 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습니다.

터널의 끝에서 희미하게 보였던 빛

상담부터 법원의 인가까지 약 4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그동안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수입과 지출을 정리하면서 정신적으로도 정리되는 시간이었죠. 법원에서는 제 상황을 면밀히 검토한 끝에 개인회생 인가를 내주었습니다.

변제계획은 월 48만 원씩, 총 3년간 갚는 조건이었습니다. 당장은 숨통이 트였지만, 시작은 여전히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소비 습관을 완전히 바꿔야 했고, 외식은 거의 끊었고, 휴대폰 요금제도 바꿨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회사에서 자리를 지킬 수 있었고, 동료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아 줬다는 점입니다.

법원에 출석했을 땐 솔직히 무척 긴장됐습니다. 하지만 제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회생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판사의 말에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이렇게 고마운 일일 줄 몰랐습니다.

조금씩,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나아가는 중입니다

지금은 변제 시작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월급의 일부를 떼어 저축하는 기분으로 성실히 갚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빚에 쫓기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을 가장 편하게 해줍니다. 아이와 웃으며 놀아줄 수 있게 됐고, 아내와도 대화를 나눌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도요.

같은 처지에 계신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혼자 끙끙 앓지 마세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저도 한때는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새로운 희망을 향해 걷고 있습니다. 용기 내시길 바랍니다. 정말로, 인생은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